[시나리오] 2035년 미래 한국사회

2020. 4. 3. 07:59레퍼런스/Trend : 동향

 

경향신문에서 2016년에 20~34세 청년 103명을 대상으로 초점집단면접(Focus Group Interview) 방식으로 '청년 미래인식 조사'를 실시하였다. 아래 내용은 참가자들이 받은 4가지 미래 시나리오다. 읽어보니 재미있어서 정리하여 포스팅 하고자 한다. 

 

 

 

1. 2035년 한국, 주황 : 판타스틱 코리아 

 

비관주의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인류 발전의 역사는 비관주의를 극복한 역사다. 신념과 패기가 없는 사람에겐 모든 것이 암울하게 보인다. 비록 우리 세대가 누리는 사회발전과 경제성장이 유래가 없는 것이기는 해도 이 성장이 멈출 것이라든지 퇴보한다는 주장은 우리 앞에 놓여있는 문제들에 지레 겁을 먹은 나약한 소리다. 우리가 정말 선배들보다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인가!

 

한국이 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5개국 모임에 들어간 여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2011년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이 사망한 뒤, 북한의 당 지도부는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2018년 남한에 흡수 통일되기로 결정했다. 중국과 미국의 동의도 통일을 이루는데 도움이 됐으나 결정적인 요인은 인터넷 등으로 외부 세계에 노출된 북한 주민들이 ‘북한의 봄’으로 알려진 반체제 운동을 벌인 것이었다. 통일 뒤 이념의 갈등, 북한 사회 재건 등 후유증이 적지 않았으나 남한과 북한 두 나라는 한동안 1국2체제를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왕래하고 경제 교류를 활성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은 자연스럽게 남한사회에 흡수됐다. 통일 덕분에 한국은 인구 감소의 걱정 없이 경제적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2035년 통일 한국의 인구는 8000만 명. 남북한 모두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 감소가 예상됐으나 통일이 한반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메가시티 서울의 인구는 2000만 명에 육박했고, 이중 20%는 아시아 북미 유럽 아프리카에서 온 외국인들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서울리안(Soulian)’으로 불리며 미국의 뉴요커나 싱가포르 시민처럼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서울에서 중국, 러시아, 그리고 유럽을 잇는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아시아와 유럽 전역을 오고간다. 경제개발을 지속한 덕분에 예전 북한지역이었던 남포, 개성, 나진 등이 거대 도시로 성장했다. 특히 남포에서는 유전이 발견돼 경제발전에 보탬이 되고 있다.

 

밤이 되면 서울은 더욱 화려해진다. 빌딩 벽면 전체가 번쩍거리는 광고판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강남에 위치한 200층짜리 빌딩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자, 가장 큰 광고판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저녁 6시가 되면 900m가 넘는 거대한 빌딩 벽면으로 비행기 광고가 떠오른다. 최근 들어 개인 비행기 구매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메꾸어 국토를 확장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행기 소유자를 위한 개인 섬 소유도 증가하고 있다. 

 

얼마 전 열린 G5의 참가국이자 개최국이었던 한국은 전 세계에 엘리트 국가, 글로벌 국가라는 인상을 남기며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쳤다. 해외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외국인 투자자 유치에도 힘을 쏟은 결과다. 다문화 가정 출신 엘리트들도 한몫을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싹트기 시작한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사회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역량이 재발견 되었다. 여러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오픈마인드와 외국어 능력, 인종을 명확히 알 수 없는 외모 등은 이들만의 독특한 능력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문화 엘리트그룹이 약진하자, 토종 한국인 엘리트그룹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순혈주의와 다문화주의의 갈등, 외국인 범죄의 증가, 문화간 충돌은 여전히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이 새로운 사회적 약자층으로 부각된 지 오래됐으나 이들의 삶의 질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

 

석유가 고갈된다는 주장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국인은 중동의 산유국들과 손잡고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유전을 발굴했다. 게다가 2010년대 미국 캐나다 중국을 중심으로 셰일 가스(shale이라 불리는 퇴적암 층에 매장돼 있는 가스)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개발됐고, 석탄에서도 석유를 만들어내는 신기술이 보급되면서 에너지 걱정은 해소되고 있다.

안정적이고 값싼 에너지 공급에 힘입어 한국은 세계 최강의 전자기술뿐 아니라 나노공학, 유전공학을 발전시켜 세계 경제발전에 이바지했다. 이런 기술 개발을 통해 불치병으로 알려진 암을 완치하는 방법을 발견해 인류 생존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암세포 완치 기술을 발견한 이세철 박사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32년 의학 분야 노벨상을 수상했다. 

 

한국은 혁신적이고 유능한 기업가들 덕분에 5대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이들 경제인은 정치적인 힘도 막강했다. 그 결과 2032년 한국의 대표적인 에너지기업인 대한그룹 김재수 회장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김 회장을 지지하는 한국경제인연합회는 정부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한국 10대 기업가들의 의견에 따라 한국정부는 각종 정책을 조율한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2034년 3월 설문조사에서 한국 대학생의 87%가 장래의 꿈을 ‘기업가’로 밝히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허리케인에 전류를 쏘아 힘을 약화시키고, 초음파로 해일을 잠재우는 최첨단 자연재해방지기술을 개발해 일약 세계적인 기업가가 된 이정한은 막대한 돈을 벌어 미국서 제작한 소형 잠수함 ‘딥 플라이트(Deep Flight)’를 타고 해저를 탐험하면서 새로운 사업을 꿈꾸고 있다. 제2의, 제3의 이정한이 나오는 것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있다. 

 

 

2. 2035년 한국, 노랑 : 느림의 나라 

 

이 세계의 붕괴를 예측한 많은 예언자들은 모두 틀렸다. 붕괴의 시작점은 천재지변도, 전쟁도,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도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의 ‘한가로움’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다. 경제성장주의자들은 이런 욕망을 일종의 정신병으로 진단했는데, 사람들은 이런 자신의 욕망이 시대적으로 적절했음을 깨달았다.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은 생산을 멈추고, 쓰던 “사물들이 파괴되지 않도록 지키기 시작”했고 사물들이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소비를 통해 성장을 추구한 대한민국 경제가 이 때문에 붕괴됐다는 것이 처음엔 믿기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느림의 나라, 한가로움의 사회, 머뭇거릴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대로 받아들였다. 그 시대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증가하자 노동의 사회는 스러졌다.

 

2008년 미국 경제위기에 이어 2010년 유럽이 경제위기를 겪더니 2017년 중국에 투자한 외국계 회사들이 대거 자국으로 철수하자 설마 하던 일이 벌어졌다. 세계 경제를 지탱하던 중국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수출에 크게 의존하던 한국 경제는 중국 경제가 쇠퇴하자 수출기업들이 도산하고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생계형 범죄가 증가했고 사회 불안은 극도에 달했다. 설상가상, 2018년 중동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분쟁으로 석유 값이 폭등하자, 세계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붕괴로 치달았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세계 최강의 경제군사대국이 된다는 주장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경제강국의 길을 걷던 중국은 과도한 성장주의 정책으로 2000년대 초기부터 대도시 인근의 마을들이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았다. 대표적인 예가 암마을(癌症村, cancer villages)의 급속한 증가였다. 공업 폐수가 마을의 식수를 오염시켜 이 물을 마신 주민들이 대부분 암에 걸린 것이다. 해마다 중국에서는 200만 명이 암에 걸려 사망했다. 무분별한 성장주의가 낳은 폐해였다.

 

중국과 세계 경제의 쇠퇴, 한국 기업들의 도산, 환경 오염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갔다. 2010년 수천 명에 불과했던 귀농인구는 2017년 세계경제의 위기를 계기로 급속하게 증가했다. 이들은 경제활동의 패배자이기도 했지만, 지나친 경쟁 탓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시골 행을 택했다. 어느 시인이 쓴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이기 싫어 도시를 떠났다”는 표현이 이들의 마음을 적절히 대변했다. 

 

2035년 3월 현재 남한 인구의 33%(1천5백만 명)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미래가 불투명했기에 결혼한 부부들은 출산을 미뤘고, 이에 따라 출산율 저하는 지속됐다. 인구가 계속 감소하자 대도시들은 점점 황폐해졌다. 2018년 정점을 찍은 남한의 인구는 이후 줄곧 감소해 2035년 현재 42000만 명, 이는 1990년 수준과 비슷하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1600만 명, 2005년과 비교하면 300%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이들이 겪은 경제 위기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021년 경남 산청과 하동, 전북 무주, 대전 대덕, 강원 홍천 등 한국의 여러 공동체가 결성돼 “경제 위기는 곧 공동체의 위기”라며, 자급자족형 마을 네트워크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지난 날 과도한 노동으로 빼앗겼던 시간을 되찾기 위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만큼만 생산하고 노동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과 식량을 생산해 지역 공동체 주민들과 나눴다. 이처럼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시작되자, 정부는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행복을 중시하는 국민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를 도입해 국정운영의 지표로 삼았다. 예전에 사용했던 국민총생산이나 국내총생산의 경제적 지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이 같은 급속한 변화는 두 가지 특이한 현상을 낳았다. 하나는 기독교인이 줄고 불교인이 증가한 것인데, 그 이유로 어떤 학자는 자본주의의 붕괴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는 사회에서는 불교가 기독교보다 더 적합하다는 것이 이유라고 했다. 사람들의 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사색하는데 할애하고, 시(詩)를 쓰거나 대화하면서 정신적 성장을 추구한다. 한가로운 시간을 많이 확보한 사람일수록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로 인정받는다.

 

또 다른 현상은 중앙정부의 힘이 약화되고, 지방정부의 힘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외교와 국방을 책임질 뿐 나머지는 지방정부가 알아서 한다. 지역 공동체가 발달하면서 시민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고, 정책 결정도 스스로 했다. 모든 정책은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결정된다. 이에 따라 지역을 대표했던 국회의원 제도는 사라졌다. 그러나 지역의 이슈가 생길 때마다 그 이슈를 적절하게 해결하도록 토론회를 개최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 지혜를 모으며 투표의 전 과정을 조직하는 데 관여하는 지역 대표들은 존재한다. 지역 대표는 지역 주민들이 해마다 돌아가면서 맡고 있다. 지역 대표를 맡았다고 돈이 생기지는 않지만 명예로운 일로 여기고 기꺼이 그 책임을 지고 있다. 

 

세계는 비록 예전처럼 분주하거나 긴밀히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조용하고 느긋했으며 한가롭다.

 

 

3. 2035년 한국, 파랑 : 한반도 쇄신 프로젝트 

 

“현재 인류 문명을 구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한센이 주장하는 350ppm에 맞추기 위해 경제활동 구조를 변화하려는 정부는 지구상에 단 한 곳도 없다.” 

 

2009년 인류의 생태계를 걱정한 학자들은 이렇게 비통한 심정을 토해냈다. 한센은 미국의 저명한 기후학자이자 나사(NASA) 고다드 우주연구소 소장. 그는 당시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회의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량을 350ppm으로 낮추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인류 문명은 완전한 종말을 맞을 수 있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그러나 어느 정부도 기후변화에 적극적이고 전면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지난 20년 동안 우리가 경험한대로 오롯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부담으로 남아있다. 

 

21세기 초반, 전 세계는 석유 에너지 고갈, 극심한 기후변화, 환경오염, 식량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으려고 이동하는 이주민들로 심각한 몸살을 앓았다. 이런 사태가 일어나기 전 경고는 많았으나, 어찌된 일인지 무시됐다. 2000년대 중반, 석유 수출국인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이 유엔(UN) 연설에서 세계가 석유 사용량을 줄이지 않으면 심각한 생존의 위협에 직면한다고 경고했으나 그의 발언은 국제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됐다. 미국과 대립하던 차베스의 치기어린 발언쯤으로 간주됐다. 

 

더 많은 석유의 사용으로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됐고, 지구의 기온을 충격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오늘” 자신이 소비할 수 있는 자유를 중시한 나머지, “내일” 우리의 후손이 누려야하는 자유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렸다. 

 

각국의 정부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음에도 전면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사실 정부 스스로에게 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유권자에게 그 책임이 있었다. 1980년대 서구 선진국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내건 신자유주의 때문에 세금을 더 적게 걷고 각종 규제를 푸는 정책을 쏟아냈다. 게다가 중국과 인도 등 신흥공업국이 앞다퉈 경제 개발에 나서자 인구가 증가해 에너지 사용이 폭증했고 이 때문에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그럼에도 선진국들과 신흥공업국가들은 서로 타협점을 찾지 못했고, 각국의 정부 역할은 점점 축소됐다. 반면 민간 기업의 자유는 대폭 확장됐다. 기업의 자유는 현재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될 뿐 미래의 책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이 때문에 화석연료 고갈에 대처할 새로운 에너지 자원의 개발은 지지부진했다. 환경오염에 대처할 재원도 부족했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주체도 없었다.

 

극심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유럽과 중국의 주요도시들이 홍수로 물에 잠겼고,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미국 하와이의 대표적인 휴양지 와이키키 해변이 사라졌는가 하면, 히말라야 빙설이 녹아내리면서 네팔의 많은 지역이 물에 휩쓸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2027년 한국국토의 2.6%가 바닷물에 잠겼다. 

 

전 지구적인 위기가 인류를 위협하자 2027년 한국을 포함한 세계 15개국 과학기술 강대국 모임 ‘G-15’이 조직됐다. 이들은 우선 요동치는 국제 금융시스템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각 나라별 석유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해 에너지 위기에 대처했다. 세계의 각 기업들은 물건을 생산하면서 대기를 오염시킨 만큼을 빚으로 처리하는 새 재무제표 지침을 따라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변화는 남한과 북한이 함께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2029년 남한은 북한과 손잡고 한반도를 ‘소비사회’에서 ‘보존사회’로 탈바꿈시키는 데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보존사회란 환경을 보호하고 에너지 자원을 아껴 쓰면서도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사회다. 북한은 과거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난 행군의 사회’를 보여주었기에 보존사회를 실현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주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식량 배급제라든가 생산과 소비가 공존하는 도시 건설, 쓰레기 없는 쓰레기통의 개발 등이 효과적이었다. 남한과 북한은 보존사회를 정착시키기 위해 ‘낭비 없는 성장,’ ‘최고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회’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소비사회에서 보존사회로 전환되면서 한국의 정치판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보존사회를 제창한 남한의 쇄신당은 2028년 권력을 잡으면서 북한 정부에 남북한 공동정부를 세우자고 주장했고, 북한이 이에 호응했다. 공동정부에서 추구하는 모든 정책은 에너지와 식량 안보에 초점을 맞췄다. 공동정부는 미래세대부라는 새로운 부처를 설립하고, 앞으로 모든 정책은 현재 세대의 이익뿐 아니라 미래세대의 이익과 안정을 함께 고려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후손들에게 지속가능한 환경을 물려주고, 그들도 그들의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유산을 물려줄 수 있다. 정부는 전례 없이 시민들의 행동을 규제하고 있으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정부의 방침에 따르고 있다. 그만큼 시민들의 정부 신뢰도는 높다. 

 

쇄신당은 보존사회의 비전을 더욱 효과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G-15에 속해있는 세계 유명대학들과 손잡고 석유자원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를 위해 서울에 ‘세계 녹색 대학’을 설립하고, 에너지와 식량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유치해 명실상부 통일한국의 가장 수준 높은 대학으로 육성하고 있다. 지구행성 쇄신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에게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으므로……. 

 

 

4. 2035년 한국, 녹색 : 미래에서 온 소녀 

 

어쩌면 우리 인류가 과거의 어느 지점에 아주 작은 씨앗을 몇 개 심었고, 그걸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씨앗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았지만 스스로 매년 한 뼘씩 자랐고, 어느 순간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인류는 이제 커다란 나무가 된 그 씨앗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세상은 불쑥 튀어나온 세상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꿈이었고 비전이었다. 지금은 지구상 모든 존재의 세상이 되었지만…. 

 

인간과 로봇이 결합한 포스트 휴먼(post-human)의 등장. 21세기 초반 인류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꽤나 당혹해하고 놀랐으리라. 기독교 신자들은 인류가 신(神)이 되려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비난했고, 과학자들조차 공상과학영화에나 등장할법한 스토리라며 무시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30년 전 미국의 공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2040년이 되면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가 등장할 것이란 주장은 혁신적이었다. 그러나 2034년 현재, 변형 인간이나 사이보그, 로봇, 아바타 등 포스트 휴먼의 존재는 그리 낯설지 않다. 

 

포스트 휴먼의 탄생은 로봇공학, 유전공학, 나노공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였다. 인간은 이들 공학의 발전으로 육체의 한계를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2020년 인공보족을 달고 올림픽 육상경기에 참가해 금메달을 딴 자스민 샤오캉 등장 이후, 장애인과 일반인의 경계는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오히려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기술의 변화를 받아들여 시대를 앞장서 변화시키고 있다. 뇌에 칩을 심어 기억할 수 있는 용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킨 것이나, 신체의 일부분을 기계로 대체해 슈퍼맨 버금가는 파워를 발휘한 것도 모두 장애인들이었다.

 

시간과 경험의 한계도 극복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은 포스트 휴먼 시대에 새로운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에 저항감이 적었을 뿐 아니라 창조의 능력도 뛰어났다. 어른들의 전유물이었던 경험은 더 이상 시간에 종속되지 않았다. 그런 경험은 컴퓨터를 통해 뇌로 이식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언어 역사 수학 지리 등은 더 이상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학교는 답을 찾는 능력보다 질문을 찾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답이 없는 질문을 생각해내는 것이 최고의 지능으로 대접받는다. 2035년 학교에 없는 것은 교실, 선생과 학생, 교과서, 참고서다. 반면 있는 것은 배움자, 인공지능 게임, 심리반응적 물질로 구성된 초공간 건물 등이다. 초공간 건물은 나노공학의 발달로 포스트휴먼의 생각대로 반응하고 변형된다. 이 시대 가장 인기 있는 학교는 <마즈-K>로 화성에서 생존하며 우주를 탐구하고, 다양한 지구의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개발하는 곳이다. 이곳에선 생체전기를 이용해 무리-마음(hive-mind)을 사용하도록 수련하는데, 나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연결해 집단지성을 형성한다. 이를 통해 공동체를 유지하는 각종 정책을 평가하고 결정한다. 

 

포스트 휴먼들은 진화된 능력으로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날아갔고, 화성에서 외계 생물체가 발견되자 미국은 2031년 화성에 최초의 지구인을 위한 기지를 세웠다. 화성에서 발견한 우주 생명체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생명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구 환경의 관점에서 하나의 돌이었고, 먼지였고, 구름이었다. 화성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존재들이 사실은 우주 생명체였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인류에게 우주는 배울 것이 풍부한 공간으로 재인식되었고, 지구인이란 한계를 넘어 우주인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은 2034년 역사상 처음으로 화성에 한국인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

 

한편, 홀로그램으로 불렸던 3차원 영상기술 덕분에 사이버 세계는 이제 지구인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남한과 북한의 청년들은 다양하게 창조된 사이버 공간에서 서로 사랑하며 삶을 즐기고 있다. 한반도가 아직 분단돼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현실은 의미 없는 공간이 됐다. 가상현실 공간을 기술적으로 구현하고 확산시킨 최고려씨는 2032년 남북한 시민들이 모여있는 가상공간의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최고려씨는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새로운 기술의 진보를 몸으로 직접 적용해 나이가 멈춘 포스트 휴먼이 되었다.

 

2035년 한국은 7명의 위원들이 모여 공공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구조를 발전시켰다. 7인의 위원 중 두 명은 안드로이드(스스로 진화하는 로봇)들이며, 한 명은 우주대학에서 양자전송공학을 가르치는 아홉 살 난 소녀 마스터 L이다. 마스터 L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심미안을 가졌다. 또 로봇에겐 선한 마음을 불어넣어 이들이 사람들과 갈등 없이 일하고 놀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는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어 일명 “미래에서 온 소녀”로 불리고 있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512312232511#csidxbfdee02453ec990b1df2f1a967300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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